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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의 스릴

태양 관문이 닫히고 종이 세 번 울려도 필트오버 도심은 인파가 북적여 케이틀린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한 메인스프링 크레센트에서 그녀는 번화가를 거니는 한밤의 유흥객을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드로스미스 거리의 극장과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길은 더욱 혼잡해지고 있었다. 데바키를 한시라도 빨리 따라잡지 못하면 놓칠 것이 뻔했다.

“놈이 보이나?” 모한이 뒤따라 오며 소리쳤다.

“보이면 벌써 쏴 버렸겠죠!”

케이틀린의 어깨엔 장전된 마법공학 소총이 걸려 있었지만 목표물이 보이지 않았다. 데바키는 놀란 사슴처럼 잽싸게 달아났다. 그는 지난 5주 동안 (알려진 것만) 연구소 세 군데를 털었고, 케이틀린은 다른 두 절도 건도 데바키의 짓일 거라 짐작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케이틀린과 모한은 모리치 가문의 작업소 근처에서 잠복을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데바키가 나타났다. 처음엔 몰랐지만 시청 직원이 가로등을 점등하자 맞은 편 카페의 유리창에 데바키가 비쳐 보였다. 데바키도 그 순간 케이틀린을 보았고 놀란 부둣가의 쥐처럼 줄행랑을 놓았다.

갈림길이 나타나 케이틀린은 발을 멈췄다. 우아한 가로등에서 따스한 황색 불빛이 내리쬐며 케이틀린을 쳐다보는 놀란 행인들의 얼굴을 비췄다. 케이틀린의 하늘색 눈동자가 데바키의 독특한 실루엣을 찾아 바쁘게 움직였다.

밤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양 볼이 벌겋게 상기된 젊은 사내가 케이틀린에게 손을 흔들며 길을 건너 왔다.

“도망간 남자를 찾고 있나요?”

사내가 물었다.

“커다란 모자 쓴 녀석이죠?”

“맞아요.”

 

케이틀린이 대답했다.

 

“보셨어요? 어디로 갔나요?”

사내가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저 쪽으로 내빼던데요.”

사내가 가리킨 쪽을 보니 색색의 유리와 철골 기둥으로 장식된 드로스미스 거리에서 관객이 웅성이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상, 돈 많은 취객을 노리는 호객꾼과 금세 뒤섞여 버렸다. 땀 범벅이 된 모한이 케이틀린의 옆으로 뛰어 와 허리를 숙이며 양 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푸른 제복은 비뚤어져 있었고 모자는 뒤로 벗겨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인파에 섞이려는 속셈이지.”

 

모한이 헉헉거리며 말했다.

케이틀린은 데바키의 행로를 제보해 준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값비싼 고급 맞춤옷을 입고 있었지만 소매는 헤지고 팔꿈치는 닳아 빠져 있었다. 유행이 1년이나 지난 외투의 색상과 카라를 보며 케이틀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락세에 있는 졸부라...’

“어서, 케이틀린! 까딱하단 놈을 놓치겠어.”

 

모한이 붐비는 거리를 보며 말했다.

케이틀린은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여 길바닥을 살펴보았다. 바닥에 깔린 자갈은 저녁에 내린 비로 젖어 있었고 행인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 뛰어간 듯 자갈 사이에 깊은 홈이 나 있었다. 하지만 홈의 방향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었다.

“데바키가 얼마 줬어요?”

 

한물 간 유행의 사내에게 케이틀린이 물었다.

 

“설마 금 부속품 하나도 못 받은 건 아니죠?”

“다섯 개 받았어요, 사실은.”

 

사내는 인정한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이며 답하더니 바로 등을 돌려 비열하게 웃으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뭐 저런…!”

 

모한은 소리쳤고, 케이틀린은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귀중한 몇 초가 흘러가긴 했지만 데바키의 행방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상관의 아내가 경관들에게 구워 주는 달콤한 페스트리를 끔찍이 좋아하는 파트너 모한은 케이틀린에 금세 뒤처졌다.

케이틀린은 인적이 드문 골목과 높다란 벽돌 창고 사이의 꼬불꼬불한 길을 단숨에 뛰었다. 인파를 헤집고 번화가를 달리다가 사람들에게 부딪쳐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필트오버를 가르는 대협곡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아지기만 했지만 데바키보다는 자신이 지름길을 더 잘 알 터였다. 미로 같은 길을 한참동안 달린 끝에 케이틀린은 들쑥날쑥한 절벽을 따라 굽이치며 이어진 자갈길에 다다랐다. 한밤 중에도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마법공학 컨베이어벨트가 있어 ‘터미널 길’이라 알려진 자갈길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철골 구조의 매표소는 아직 열지 않은 듯 마름모 형태의 철창살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열댓 명의 자운인이 매표소 주변에 둘러 앉아 있었는데 대부분 술에 취한 상태였다. 데바키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케이틀린은 몸을 돌려 수그려 앉아 메다르다 가문의 표식이 새겨진 상자에 총대를 올려 놓았다. 상자도 도난품일 것이 뻔했지만 지금은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엄지 손가락으로 총의 장전 스위치를 올렸다. 탄약통이 낮게 윙 소리를 내며 발사 준비를 했다. 개머리판을 어깨 쪽으로 힘껏 잡아당기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밤색 개머리판에 한 쪽 볼을 갖다 대고, 한 쪽 눈을 감고, 수정 렌즈를 들여다보며 총을 조준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기다란 모자를 쓴 데바키가 기다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길모퉁이를 돌아 나타났다. 경찰을 따돌렸다고 생각하는지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가위손처럼 날카로운 손톱을 장착한 손엔 모서리가 청동으로 장식된 묵직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멍청한 어린 시절에 자운의 불법 장비 제작소에서 받아 장착했다고 바이가 알려준 그 가위손이었다.

케이틀린은 가위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주황빛 불꽃이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기 무섭게 가위가 폭발했다. 데바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지자 들고 있던 상자와 머리 위의 모자가 연달아 땅으로 떨어졌다. 고통스러워 하며 고개를 든 데바키는 케이틀린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몸을 돌려 도주하려 했지만 케이틀린은 이미 그의 수를 훤히 읽고 있었다. 그녀는 엄지 손가락으로 탄약통의 스위치를 올리고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불꽃이 데바키의 등에 닿자 번쩍이는 거미줄 같은 전자기장이 펼쳐졌다. 데바키는 등을 움츠리고 부들부들 떨다가 땅에 쓰러졌다. 케이틀린은 총을 끄고 어깨에 둘러맨 뒤 쓰러진 데바키에게로 다가갔다. 감전의 고통은 줄어들고 있겠지만 일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케이틀린은 허리를 숙여 데바키가 떨어뜨린 상자를 줍고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어, 어떻게…?”

 

온몸이 발작하는 가운데 데바키가 말했다.

“어떻게 이리로 올 줄 알았냐고?”

 

케이틀린이 물었다.

데바키가 발작하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벌인 절도건은 처음엔 별 거 없어 보였어. 하지만 큰 계략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비시라의 마법공학총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지.”

 

케이틀린이 답했다.

케이틀린은 데바키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뻣뻣해진 그의 몸에 손을 얹었다.

“너도 알겠지만 비시라의 총은 너무 위험해서 법으로 금지돼 있어. 필트오버엔 금지된 마법공학에 감히 손을 댈 사람이 없지. 녹서스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아마 돈도 두둑히 챙겨주겠지? 그런 물건을 필트오버 밖에서 구하려면 자운의 무명 밀매상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오밤중에 자운으로 가려면 이곳이 제일 빠르지. 네가 필트오버 내에서 잠적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확실해졌어. 네 놈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거였지. 이제 나랑 긴 대화를 한 번 해 보자구. 누가 사주했는지 안 불고는 못 베길 거야.”

데바키는 말이 없었고, 케이틀린은 축 쳐진 그의 몸 위로 손을 뻗으며 씨익 웃고 말했다.

“모자가 참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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